장준하 아들 조국 딸 응원 편지
독립운동가 고 장준하 선생의 3남인 장호준씨가
1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딸 조모씨를 응
원하는 글을 SNS에 올렸습니다.
그는 '휼륭한 아버지'를 둔 자신과 조양의 공통점을
설명하며 힘든 시간을 보낼 조국 후보자의 딸을 응
원했습니다. 미국에서 목회 활동을 하는 것으로 알
려진 장씨는 SNS에 올린 글에서 "조양의 아버지에게
하이에나 처럼 달려들고 있는 자들로 인해 조양이
겪을 아픔의 시간들을 자랑스럽게 새겼으면 하는 마음"
이라며 "그래 내가 조국 딸이다" 를 더욱 크게 외치는
조양이 되길 믿는다"고 당부했습니다.
장하준 선생의 3남 장호준씨 페이스북 글 전문
조양에게,
내 소개를 먼저 해야 할 듯하군요. 나는 미국 커네디컷
맨스필드 타운에서 스쿨버스 운전사로 살아가고 있는
장호준이라고 해요. 최근 조양의 아버지가 겪고 있는
일들에 대한 소식을 접하면서 나는 오히려 조양이 당
하고 있을 일에 더욱 화가 났고 많이 아팠답니다. 몇번
의 망설임이 있었지만, 그저 동네 아저씨가 해주는 이
야기 정도로 들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 글을
보냅니다.
나는 어려서 동네 공터에서 야구를 했던 적이 있었어요.
신나게 놀던 중 방망이에 맞은 공이 공터를 벗어나 남의
집 담장 너머로 들어갔고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리는
것과 동ㅇ시에 아이들은 도망쳤지요. 하지만 대문을 박
차고 달려 나온 집주인에게 결국 몇몇 아이들이 붙잡히
고 말았답니다.
집주인은 "이놈 자식들! 다시 또 여기 와서 야구를 하면
그때는 정말 혼날 줄 알아!"라고 호통을 치면서 아이들의
머리를 몇 대씩 쥐어박고 보내주었어요. 하지만 나는 보내
주지 않았지요. 오히려 집주인은 내 등을 두드려주며 이렇
게 말하는 것이었어요. "넌 저 아이들처럼 놀면 안돼, 너희
아버님이 어떤 분이신데, 네가 이렇게 놀면 되겠니?"
억울했었어요. 나도 다른 아이들처럼 그냥 몇 대 쥐어박고
보내주면 될 것을 꼭 아버지 이름을 꺼내는 것이 싫었기
때문이었지요. 내게 아버지의 이름은 결코 떼어낼 수 없는
시치미였지요. 학교와 군대에서 요시찰 대상이 되어 부당한
압박을 받았던 것도 내가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것 때문이었
어요. 하지만 아버지의 이름은 내게 큰 혜택을 주기도 했기에
신학교를 다니던 시절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나를
가르쳐 주신 교수님이 아버지와 동문수학 하셨던 분이셨던
덕이었고, 해외 후원금을 받으며 암울했던 시절을 버텨낼
수 있었던 것 역시 내가 아버지의 아들이었기 때문이었지요.
그럼에도 아버지의 이름은 늘 내게 족쇄가 되어 부담과 고통
을 감수하도록 했었답니다. 지금은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는
딸아이가 언젠가 내게 "아빠, 초등학교 때 내가 왜 학교 앞에서
불량식품을 못 사먹었는지 알아? 장준하 선생님의 손녀가 길
거리에 그런 것을 사 먹는다고 할까봐 안 사 먹었던 거야"라고
하는 말을 들었을 때 아무런 대답도 못 한 채 고개만 끄덕일 수
밖에 없었던 것은 내 아버지의 이름이 내 아이에게까지 시치미가
되고 있다는 것에 가슴이 아려왔기 때문이었답니다.
조양,
물론 그런 생각은 하지 않겠지만 마음 어느 한구석에서
"하필 내가 왜 조국 딸이어서"라는 소리가 들리게 될
지도 모르겠네요. 하지만 "그래, 내 아버지가 조국이다."
라는 소리가 더 크게 외쳐지리라 믿어요. 물론 나는 조양
에게 '괜찮아질 거예요. 힘내세요'라든가, '참고 기다리면
다 지나갈 거예요'라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예요. 다만
지금 조양의 아버지에게 하이에나처럼 달려들고 있는 자
들로 인해 조양이 겪고 있을 아픔의 시간들을 자랑스럽게
새겼으면 하는 마음이에요. 내 나이 환갑이 지났지만, 아직
도 사람들은 나를 '장준하 선생의 삼남'이라고 소개하고 이
제는 내가 그렇게 소개되는 것이 자랑스럽기 때문이지요.
조양,
어느 날 내가 아버지를 닮았다는 것을 보게 되었던 것처럼
조양 역시 어느 날 아버지를 닮은 자신을 보게 되겠지만
아마도 지금은 조양이 아버지를 안아 드려애 할 때가 아닌가
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군요. 만일 내가 조양의 아버지와 같은
처지에 놓인다면 딸아이가 나를 한 번 안아주는 것이 가장
큰 힘이 되리라 생각하기 때문이지요. 자랑스러운 아버지의
자랑스러운 딸," 그래 내가 조국의 딸이다"를 더욱 크게 외
치는 조양이 되리라 믿으며... 미국 커네티컷에서 장호준.
고 장준하 선생은 독립운동가 출신입니다. 장준하 선생은
1944년 일본군에 징집되어 중국 쉬저우 지구에 배속되
었으나 6개월 만에 탈출해 광복군에 합류, 미국 전략정보국
에서 특별군사훈련을 받고 국내에 특파되었다가 일본의
항복으로 중국으로 복귀한 뒤 1945년 11월 임시정부 요인
들과 함께 귀국했습니다.
이후 월간 '사상계'를 발행한 언론인, 국회의원, 민주화운동가
로 활약했습니다. 1961년 5.16 군사 쿠데타 이후 '박정희 대
통령 불가론'을 주장하는 등 민주화운동을 주도하다 수차례
옥고를 치렀습니다. 1975년 8월 17일 포천 약사봉 등산길에
의문의 추락사고로 숨졌습니다. 아직도 장준하 선생의 정확
한 사인은 규명되지 못하고 있습니다. 장준하 선생 유족들은
이후에도 박정희 정권에 의한 불이익, 압박 등으로 극심한
생활고에 시달렸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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